야곱의 피난처

  • 연합 예배 (1999년 12월 05일)
  • 창 28:10-15
  • 설교자: 이지 슈토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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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자 : 이지 슈토렉(꼬빌리시 야곱의 사닥다리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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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창세기 28장 10-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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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띠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장 10-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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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말씀>>

 
  야곱이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몰래 엿 들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잡아죽이려 했습니다. 야곱은 도망을 치고 그는 혼자였습니다. 그의 뒤에는 눈물과 분노의 집이, 그의 앞에는 알지 못하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우리 유럽 기독교인들 역시 우리자신들 뒤에 화형장과 하나님의 약속의 이름 아래 잔인하고 범죄적인 부분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우리 뒤를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습니까?

    야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외로웠습니다. 그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었습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주신 약속들이 저 멀리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 아래에서 자책과 분노를 두려워하는 야곱을 기대하는 사람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무엇인가 잡았습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전부였습니다. 성공과 성취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머리맡의 돌베개로 어떤 종교심을
준비했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지라도 세례교육에서 배웠던 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사닥다리 아니면 하늘에 이르는 계단. 좋습니다. 바빌론 포로의
유대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범상하고 거대한 피라미드, 그 안에 나타난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가 우주의 비밀을 벗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꿈에서는 다릅니다. 뿌르드끼 교수님이 우리들에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 그 사닥다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땅에서 하늘로가 아니라, 하늘에서 땅으로입니다. 야곱에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열린 하늘문, 그것은 기적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불행이 시작하는 그 처음에 사닥다리 꿈을 꾸게되었습니다.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기서 성탄절 천사의 첫 번째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하늘이 야곱의 여정을 긴 인생의 여정으로 바꾸고 있으며, 한편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옵니다. 앞에서 우리가 벌써 읽었듯이,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바빌론 위에 서서, 교활한 야곱 위에
서서, 어떤 활동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하늘과 야곱 사이에서만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 아브라함, 야곱의 후손, 땅위의 모든 족속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제 꼬빌리시 야곱의 사닥다리 교회가 잠자는 장소, 기도하는 장소, 다음 번 여행길로 보내는 장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이 하늘과 하나님이 가까이 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굽어보시는 장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단지 프라하의 북쪽에
거주하는 체코개혁교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들, 모든 민족, 어떠한 목적의 여행길에  있는 이들, 잃어버린 고향에서 암담한
목적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돌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동안, 찾고
세우고 기도하는 동안 우리의 모든 잘못을 통해서 하나님은 야곱의 피난처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약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는 사람, 어느 곳에서도 조그마한 신뢰도 내어놓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받거나 자신의 죄와 잘못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피난처를 주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오늘 체코-한국 에큐메니칼 예배, 세례식을 우리들이 축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의 후손 예수님의 성찬단, 다른
민족들의 밥상공동체로 놓여있는  그 성찬단, 그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어느 어두운 밤에 주신 말씀의 놀라운 확신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음성을 들었고 확신합니다.

아멘 아멘

인내, 격려, 소망

  • 연합 예배 (1999년 11월 07일)
  • 창 12:1-6, 롬 15:4-9상
  • 설교자: 이지 슈토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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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자 : 이지 슈토렉 목사(꼬빌리시 야곱의 사닥다리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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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창세기 12장 1-6절, 로마서 15장 4-9 상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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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  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겔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창세기 12장 1-6절)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9)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5장 4-9 상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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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모든 사람들이 아브람의 하나님 앞에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은 커다란 변화와 움직임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떠나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다른 민족들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아브람이 들어간 땅은 가나안인들이 거주한 곳이었습니다.
우리 체코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는 땅은 기독교 사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기독교 사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기독교인들에게 이스라엘의 성서를 설명할 때에 보냄을 받은 자의 관점에서 교훈, 인내, 안위(격려)와 소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 하나 하나는 특별한 중요성을 갖습니다. 교훈 – 우리가 모든 것을 안다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가르침을 받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4절에서 성서 말씀은 모두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기록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교훈의 첫 번째가 인내입니다. 인내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결국 그리스도 십자가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복음은 상품 선전이 아닙니다. (복음은 인내를 통해서 실천되어지는 것입니다.) 인내는
안위(격려)를 필요로 합니다. 언제나 인내는 연약한 식물과 같아서 오랜 돌봄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격려할 때 소망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압니다. 인내와 격려의 하나님임을 압니다. 그래서 그는 소망을 언급합니다.

   
여러분에게 인내와 격려를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보와 축복의 말씀이 됩니다. 그 말씀들은 로마 교회를 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교회는 하나님과 교회를 알지 못한 세상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인내와 격려로 교회를 축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교회가 하나님의 인내와 격려의 주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세상 한복판에 있는
그러한 교회에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간청하겠습니까? 바울은 여러분에게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뜻을 따라 모두 한
마음이 되게 하소서”라고 5절에서 간구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뜻이라면 어떤 뜻입니까? 자신의 아들을 하늘의 평화 가운데 두지
않고 세상으로 그를 보냈을 때 하나님의 뜻은 어떤 뜻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과 도우심, 대신 하심, 우리와 하나되심 그리고
죽으심의 모든 이야기는 – 점점 소외되는 적대적이 되어 가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나아가심입니다. 그렇습니다. 민족들은 하나님의
적대자들이었으나 인내와 격려의 하나님은 서로 화해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사역을 통해 모든 민족들이 다
같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 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이라”고(성서는 오늘 본문 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교회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모두를 위해 준비한 것이 의미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단지 우리 기독교인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내와 소망은
이방인들의 희망의 근거가 되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주목하십시다. 이방인들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방인들은 지금까지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대신하심이 하나님이 찬양 받으시는 모든 예배를 통해 모든 것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우리들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다른 민족,
다양한 언어와 인종 문화를 가진 민족들과 다양한 염려와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 (성적인 범죄자들, 각종
중독에 의한 정신질환자들, 동성연애자들을 지칭하는 것임 – 꼬빌리시 교회가 이들을 위한 선교활동을 펴고 있다)과 만나는 기회를
선물로 주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깊게 그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들은 우리들의 예배를 통해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자리를 우리 가운데 마련하십시다. 그리고
그들을 환영하며 그들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열심히 보흐니체 정신 병원 사역에 힘씁시다.
우리들이 더 뜨거운 마음으로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로고스 단체를 돕는 일을 계속하십시다. 우리 교회의 숙소에 머무르는 여행객들과
각종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묵고 있는 손님들을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심정으로) 도웁시다. 어떤 이익을 남기기 위한 호텔을
운영하듯이 우리들의 교회 숙소를 운영하지 맙시다. (꼬빌리시 교회는 펜지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교회 건축을
위해 외국 형제 교회들로부터 빌린 건축비를 갚고 있고 아직 완성되지 못한 교회 건축을 부분적으로 계속 증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펜지온 운영을 꼭 수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일년에 한 두 차례 짚시들을 위한 학교에서 짚시들 공동체 훈련이라든가
콘서트를 위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봉사단체들의 각종 모임을 위해 무료로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중 한 예가 사회적인 인식의 부족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로고스 나다체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그들의 활동을 목회적으로 돕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선포되는 곳에, 새로운 사회가 세워지는 곳에 하나님은 모든 일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적대민족인)
독일인들도, (체코 개혁교회에 적대적이었던) 로마 카톨릭도 그리고 짚시들도 모두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들에게)
놀라운 새로운 기쁨이 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십니다. 모든 것이 이해되어질 수 있도록 모든 이들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예배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다양한 언어를 예배시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한국말로 듣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초대 교회의 옛날
언어들로 우리들은 모든 민족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증언의 무리와 연합이 됩니다. 아멘, 할렐루야, 끼리에 엘레이존을
사용합니다. 몇 개 기본적인 예배 용어를 한국말로 배워 보십시다. 예를 들어 “빠네 스밀루이 세” –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놀라운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의 증언자들의 모든 말들을 보여 주기 위해 사도 바울은 결론으로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온갖 즐거움과 평화를 여러분들에게 가득히 안겨 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넘쳐흐르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13절)

    성만찬 때 빌립보서 2장의 찬송을 부를 것입니다. 그
찬송은 오늘날 우리들도 초청을 받고 있는 거룩한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보죄 앞에 모든 민족, 모든 언어, 모든 인종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기쁨과 평화로 부르는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교훈의 인내와 격려와 소망의 영감을 주는 도구가 됩니다. 만약에 그러한 어떤 것이 교회의 예배에서 경험되어진다면 그것은 성령의 능력과 선물이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결론으로 오늘 본문 15장의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다만 내가 이 편지에서 가끔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서 말한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은총으로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은 내가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다시 우리의 사명을 일깨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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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중의 ()는 독자의 설교 이해를 돕기 위한 번역자의 해석입니다.
 
* 설교 자가 인용한 성경 본문은 오랜 외국 생활로 한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자녀들을 위하여 현대적으로 번안된 공동번역의 성경을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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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의 손님들

  • 연합 예배 (1999년 10월 03일)
  • 창 19:1-5, 23
  • 설교자: 이지 슈토렉

1999년 체코-한국 에큐메니칼 첫번째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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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이지 슈토렉(꼬빌리시 야곱의 사닥다리 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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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창세기 19장 1-5절,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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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1)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2)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 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창세기 19장 1-5절)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창세기 19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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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아브라함에 관한 창세기 말씀들은 마치 행동강령이나 좋은 방향과 올바른 결정을 돕는 교리문답 같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의 이야기는 세례식이 있는 예배에 적당한 말씀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새롭게 하셔서 성서의 주제들을 올바르게
느끼도록 하셔서 달콤하고 자유하게 하는 복음으로 안내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움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헤어질 때 그들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롯의 눈에 요단 들판은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창세기 13장 10-11절 말씀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 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아브라함은 그 반대편 가나안을 택하였다.”

롯은 이 땅의 낙원을 선택하였습니다. 롯은 낙원을 알았고 그리고 낙원을 잘 이루어갔습니다. 방랑자로서 그 도시의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아브라함은 다른 선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입니다.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라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습니다(창세기 13장 12절). 돌멩이와 먼지,
여기 저기 듬성듬성 그것도 손바닥만한 목초들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불안합니다. 무척 위험하기도 하고 어쩌면
태만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아브라함을 부르신 그 부르심을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 1) 얼마나 허술한 약속입니까! 한 장소에 정착하지 않은 교회를 위해서.

소돔은 무엇입니까? 에스겔 예언서의 예루살렘을 벌하는 말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겔 16, 49-50) 얼마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큰지 우리들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죄악이 심히 중한지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내려와 눈으로 보겠다’고 하십니다(창 18, 20).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원인은 탐욕과 권력욕
불의를 행함, 사회적 억압, 소비(낭비)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기회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손님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
것입니다.  소돔의 죄악은 이스라엘이 경험한 첫 번째로 기록된 대학살입니다. 그래서 소돔에 심판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누가
압니까?  외국인이 된다는 것 또는 손님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 주의 깊게 다른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롯의 친절과 방문자들에 대한 롯의 존경입니다.  롯은 그들의 좋은 기독교적인 행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롯은
인간의 한 예입니다.  롯은 부유함과 안정으로 모든 면에서의 탈선 속에서 ‘좋은 행실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롯은
교리문답의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며, 마지막 순간에 환영받지 못한 손님들을 보호해 준 사람입니다. 성서에서 손님은
하나님의 천사로 복을 받았고(히 13장 2절) 그래서 복을 전하는 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자신의 삶의 위험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롯 자신만이 깨달았습니다. ‘손님처럼 있다가 심판을 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손님은 집으로 들어오고
손에는 막대기가 들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찬양하는 언제나 사방각지에서 오는 외국인들, 나그네들,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잔치입니다. 손님들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거룩한 존경을 교회가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우리들끼리 만의 성만찬의 축제
때문입니다.  죄 용서함을 우리들끼리만 주입시켰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특별히 우리들은 외국인들 알지 못합니다. 어떤 교회가
성만찬을 단지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종교적 보장을 위해서 할 때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성만찬들은 매우 근본적인
의미를 상실한 것입니다. 올바른 성만찬은 반대로 우리들이 손님들을, 낯선 사람들을 사방각지로부터 초청하는 것을 잊지 않은
만찬입니다. 그때 비로소 사랑의 하나님은 롯의 간청을 받아들여 작은 도시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롯은 말이 없습니다. 롯은 완전한
주인공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믿음과 삶의 아브라함 같은 주인공의 한 예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와 인내의
증언자, 참여자, 실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자매들, 형제들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여러분의
집일지라도 이 교회에서 이 작은 도시에서 발견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자신의 모든 연약함으로 결국 손님들을 두둔하고 편들려는 사람들, 그리고 집 없는 사람들, 소수 민족들이 마치
일시적인 거처로서 가장 작고 가장 빈약한 집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업신여김과 죽음의 고통이 일시적으로 우리 가운데 거했습니다.
교회가 여기에 예배당을 가졌다면 여러분을 위해 마치 소알처럼 작은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사닥다리 교회처럼.

    하나님의 순종, 사랑의 유머, 신실함을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강건하심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아멘

목회 서신

사랑하고 존경하고 존귀하신 성도여러분

부활의 소망이 온 천지에 가득한 계절에 성도님의 가정과 삶의 현장에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 공동체가 창립 백일을 지나면서 그동안 대과 없이 아름다운 교회로 날마다 성장해 가게된 것을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들의 기도와 말씀을 따라 살으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라 믿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지혜를 간구하고 주님의 응답을 인내로 기다리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을 치하해 마지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들이 우리들의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간구하며 그 지혜를 따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동안 우리들의 삶의 과정을 되돌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다시한번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 기억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을 친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뵈올 것을 확신합니다.

공동체 설립 세가지 정신
새천년의 벽두에 우리들은 재위에 앉아 재를 뿌리며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무릅을 꿇었습니다. 우리 자신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용서와 인도하심을 간구 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 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세 가지 다짐을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첫째 말씀과 기도로 모이는 교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위해 제일 먼저 공동체 일원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인으로 서는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떠나 전혀 낯선곳으로 오면서 겪게되는 심리적 정신적 압박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힘든 삶의 여건들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우리들의 영적인 훈련의 장으로 사용한다면 우리들 개인의 신앙에 큰 발전과 성숙을 가져올 수 있기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묵상과 기도가 필요하실 때 삶의 현장을 떠나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해외생활을 우리들의 신앙의 훈련의 장소 광야로 이해하고 우리 공동체 일원은 개인의 신앙의 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다짐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실천으로 우리들이 매일 음식을 먹듯이 하루 한 장 영의 양식을 섭취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 세 번 짧은 시간일지라도 언제나 세상으로 향하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되돌려 놓는 기도 시간을 갖는것입니다. ‘하루 한 장 성경 읽고 하루 세 번 기도’가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삶의 한 부분으로 정착되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하루의 삶은 말씀에 붙잡혀서 기도하는 삶이든지 아니면 아니든지 둘중에 하나입니다. 그 절충형은 없습니다. 하루중 일부의 시간을 주님께 드리면 하루가 주님께 바쳐진 시간이 됩니다. 이 체험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체험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둘째 나눔과 섬김으로 함께 일하는 교회
함께 일하는 공동체가 되기위해 우리들이 잊지말아야 할것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역자와 평신도의 관계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존재 할뿐입니다. 평신도를 위한 교역자가 아니고 더구나 교역자를 위한 평신도가 아닙니다. 다시말씀드려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교역자인 저와 사랑하는 성도여러분들 사이에 인간적인 세상적인 관계가 조금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사이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존재하실 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역자는 공동체의 방향과 평신도의 신앙의 길잡이의 역할과 또 평신도인 성도 여러분들은 자신의 믿음의 분량대로 나누고 섬길수 있는 일들을 자발적으로 맡아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이세상에 들어내는 일만 우리 각자들앞에 있을뿐 입니다.
교역자인 저와 그리고 평신도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일터 체코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역자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공동체의 교역자와 평신도와의 동역의 관계성\"을 한순간도 잊지않기를 바랍니다.
셋째 구제와 선교하는 교회
교회 헌금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쓰자는 다짐입니다. 교회 헌금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단지 맡겨 주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 공동체를 위한 경비는 종이 한 장도 아껴쓰고 내핍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교와 구제와 봉사를 위해 헌금 모두를 사용하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단 일꼬룬이라도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게 사용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이 교회헌금을 사용할때에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용해야될 것 입니다. 이렇게 제가 여러분들에게 권면 하는 것은 여러분들 에게 어떠한 잘못이 있기때문이 결코아닙니다. 이 일의 중요함을 다시한번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아울러 이 일을 맡아 수고하는 분들의 충성스러운 청지기의 모습과 각종 교회봉사를 교회 헌금이 아니라 가능하면 자신의 것으로 섬기려는 분들의 헌신의 모습 그리고 값싸고 더 좋은 물품을 준비하기위해 어떠한 수고도 아끼지 않으시는 우리 성도님들의 주의 몸된 교회를 내몸처럼 섬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모습들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마음들로 하나되어 주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가기를 기도드립니다.

공동체 목회 3가지 방향
‘한지붕 두가족’
백일동안 우리들은 교회의 조직 정비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그때 마다 우리들은 열린마음으로 의논하여 수정을 하였습니다. 체코형제개혁교단 꼬빌리시 교회에서 ‘한지붕 두가족’ 살림을 결정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이 제안은 체코형제개혁교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희들의 현실에 가장 이상적인 해외한인교회의 모델을 찾는 저희들의 노력을 체코 기독교인들이 이해를 하고있습니다. 저희들의 소식이 전해지자 체코 개신교 목회자들뿐 아니라 심지어 카톨릭 신부들께서도 관심을 갖고 우리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나눔의 선교(Sharing in mission)를 실천하 교회
조직정비와 아울러 우리 공동체의 선교신학으로 ‘나눔의 선교(Sharing in mission)와 실천’을 3월 26일 주일날 발표를 하였습니다.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선교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는 우리 공동체의 선교신학과 실천방안에 대한것입니다. 이처럼 공동체 세부조직을 하기전에 공동체의 큰 틀과 선교신학을 정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가족 공동체의 삶을 이루어가는 교회
공동체 창립 3대정신에 입각한 선교, 교육, 봉사를 담당할 부서 조직외에 아직 공동체 세부 조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조직은 교역자인 저의 목회방향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목회방향에 대해 숙고를 거듭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첫돌을 맞을 때까지 각 가정 단위의 목회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정의 중요성 특히 해외 체류 기간 동안에 가족단위란 절대적인 삶의 단위가 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보다 이곳에서 가족단위의 만남과 대화의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하여 각 가정이 하나의 신앙 공동체로 성숙될 수 있도록 돕는 목회입니다. 한 달에 한 주 또는 두 주를 가정예배 주간으로 정해 그 주간에 제가 각 가정 순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행 과정에서 더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이 정비 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각별한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우리 공동체의 모든 가정들에게 이 목회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새 생활’이 시작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단비처럼 내려지기를 원합니다.

2000년 5월 7일
목사 이종실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의 선교 신학과 실천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의 선교 신학과 실천 >

1. 우리의 선교신학으로서의 나눔의 선교(Sharing in mission)

첫째, 인적(人的), 물적(物的), 교회의 경험적(經驗的) 자원 세가지가 나눔의 요소이다.
세가지 나눔의 자원 가운데 \"나눔의 선교\"의 가장 토대가 되는 자원은 교회 경험이다.

둘째, 우리 공동체 내부적으로 우리들은 각기 다른 교회(교단)을 배경으로 다른 신앙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의 다른 신앙 경험들은 배타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되어야 한다.

세째, 이러한 관심과 신앙의 자세는 체코교회와의 교류에서도 적용이된다. 체코교회로부터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또 할수 없었던 신앙 유산을 먼저 우리가 배우는 자세를 가짐으로써 \"나눔의 선교\"는 시작된다.

네째, 교회 경험의 교류는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사명을 올바르게 인식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교회의 자기사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곧 선교적인 교회로서의 자기 발견의 길이다.

다섯째, 꼬빌리시 교회는 우리들의 선교의 실천의 장인 동시에 체코개혁교단과의 협력의 상징성이다.

2. 우리들의 선교방법과 목표

첫째, 꼬빌리시 교회가 열린교회로
1) 체코-한국 에큐메니칼 예배
2) 교회 봉사로 체코교우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임
3) Working group에서의 교류 프로그램 개발
둘째, 꼬빌리시 교회가 지역사회의 센터로
1) 한국문화소개 – 지역주민과 교회를 문화를 통해 친숙하게
2) 보흐니체 심리치료병원 선교
3) 자블리체 디아코니아를 선교기지로
셋째, 꼬빌리시 교회가 복음전파를
1) 문서를 통한 복음전도
2) 위의 활동을 통해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자들을 위한 목회

3. 선교를 위한 우리들의 자세

첫째,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드리는 예배 공동체
– 예배를 한주일의 행사가 아니라 일주일동안 말씀과 기도로 씨름하며 매일 매일을 예배적인 삶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둘째, 배우는 공동체
– 가르치고 주장하는 자세를 버리고, 타인으로부터 경청과 배움이 있는 공동체
셋째, 함께 일하는 공동체
– 목사부터 어린자녀에 이르기까지 작은 일 하나라도 함께 섬겨가는 공동체

작성자 목사 이종실, 작성일 2000년 3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