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8년 10월 28일)
- 요한복음 8장 31-38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자유를 위한 진리-말, 집, 아버지 - 요한복음 8장 31-38절.docx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요11:48)
예수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서 로마가 유대나라를 전멸시키는 상황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자기들의 안전과 자유를 앗아갈 수 있는 위험인물로 비쳐졌던 것이죠. 이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자기 목숨을 바쳐 그들에게 자유를 주시려 하는 예수님이 그들에겐 자기 안전과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로 비쳐져 죽이려 하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상황을 정확히 간파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자기 집’에서 내몰려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확실히 예수님은 그들이 거할 집을 바꿔주고자 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의 집을 빼앗는 게 목적이 아니라, 참으로 안전하고 영원한 집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종은 언제나 주인으로부터 받을 보상이나 처벌을 염두에 두고 주인에게 반응합니다. 종은 주인의 집에 거하면서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거합니다. 그래서 종은 최소한의 자기 안전과 자유를 확보할 길을 스스로 뒤로 마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존재의 기반 위에서는 온전한 자유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다릅니다.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 쫓겨나리라는 두려움을 갖지 않습니다. 설령 그 집을 떠나게 돼도,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언제나 아들은 두려움 속에서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아버지와 교제하고 반응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시며 그분의 자유를 드러낸 방식입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요10:17-18)
이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운 한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그는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들은 영원히 아들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그 아버지 집에 영원히 거합니다. 그래서 아들은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이 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요1:12). 그리고 이 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누리는 자유를 배웁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참 자유’는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 아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영원한 집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인 한, 결국 우리에겐 돌아갈 처소가 있고, 거기서 우릴 기다리시며 맞이하시는 우리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처럼 자유의 삶을 위해 우리에게는 어떤 ‘집’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예비된 집을 생각하며 든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참된 집은 곧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집입니다.
마지막 셋째 키워드는 ‘아버지’입니다. 본문 3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아버지는 그 사람이 속한 세계와 거기 영향을 미치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본 것을 말한다 합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의 세계 속에서 그분의 영향력 아래서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유대인들도 그들의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 합니다. 그들의 아비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그의 영향력 아래서 행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그들 사이의 차이는 다만 이것입니다: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 그러면 그들의 아비는 누구입니까? 처음에 그들은 자기 아버지가 ‘아브라함’이라 주장합니다. 이 속엔 그들의 민족적 자존심이 들어 있지요. 마찬가지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자기 우주로 삼고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실제 그들의 아비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 속에는 아브라함과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어 그들은 자기 아버지는 ‘유일신 하나님’이라 주장합니다. 이 속엔 그들의 종교적 자존심이 들어 있지요. 마찬가지로, 내 신념, 내 철학을 자기 우주로 삼고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실제 그들의 아비는 하나님도 아니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실제 그들의 아비는 누구란 말입니까? 본문 44절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