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8년 9월 16일)
- 요한복음 13장 1-17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요한복음 13장 1-17절.docx
오늘 우리가 누군가에게 행하는 사랑과 섬김, 환대와 용납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게 행한 결과, 내가 기대했던 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면, 모두 무의미한 것인가. 영성학자 헨리 나우웬은 ‘환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환대는 우선적으로,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자리를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애초부터 ‘환대’란, 상대를 내 뜻대로 변화시키는 걸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환대’는, 나 자신을 ‘상대방을 위한 자유의 공간’으로. 또한 ‘하나님에 의한 변화의 공간’으로 내어놓는 일과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환대는,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실천이 아닐까요. 자유는 능력(capacity)이 아니라 실천(practice)입니다. 나에게 이런 저런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 말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 내가 그와 같은 것들을 행할 수 없다면, 나는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마지막 기회의 시간에 그분에게 주어진 자유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죽음조차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당장에 상대방을 내가 기대한 대로 변화시킬 순 없을 지 몰라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좋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신비한 공간을 창출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데는 목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 14-15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사랑과 섬김, 환대와 용납을 베푸신 것처럼. 그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행하기를 바라시며 본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그 시절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해 듣고 또 체험한 복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릴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고, 영광스런 그분의 나라에 초청하신다는 ‘용납’과 ‘환대’의 복음이 아닙니까. 다른 이에게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일과 관련해. 많은 경우 우리는 그 사람과 나 사이에서 이리재고 저리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둘 사이의 관계 말고,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생각하라 하십니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우리보다 크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으로 섬기셨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하나님의 집 주인 자격으로. 그러나 하나님께 보냄받은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환대와 용납의 마음을 나타내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미 우리가 속한 그 하나님의 집 주인의 자녀 자격으로. 서로 겸손히 용납과 환대를 실천하며 살기를 주님은 바라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하며” 살 자신은 없습니다. ‘끝까지’는커녕, 약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도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강요될 수 없는 것임을 압니다. 사랑도 은혜입니다. 하나님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지금 내가 그만큼 사랑할 수 없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강요될 수 없는 것이지만, 또한 막을래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스스로를 속이거나 정당화하려는 유혹입니다. 지금 내가 ‘그것’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지금 내가 하는 ‘이것’이 충분히 옳다 할 순 없습니다. 미움과 배제와 분리가 답은 아닙니다. 힘들어도, 용서와 포용과 화해를 향해 가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거기에 이르길 소망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생각할 때. 아마 우리 중 누구도 이미 도달했다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남은 일은, 각자 진솔하고 우직하게 한 걸음씩 그분을 따르는 일 아닐까요. 주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