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5)

 


2014년 1월 25일 오늘의 말씀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장 26b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편 4-5절) 

 

묵상


 

저 자신도 사람이지만, 때로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 너무 실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지능이 뛰어나다 하지만, 때로는 그래서 더 큰 일이다 생각되기도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말은 듣기에 따라선 매우 우려스런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얘기입니다.

지식도 힘도 바른 방향으로 쓰여질 때 긍정적 의미를 띨 수 있는 것이지, 틀린 방향으로 쓰여질 때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다른 생물들을 다스릴 권한을 주십니다.

시편 기자가 말하듯,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

사람에게 그럴 만한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람 역시 하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실 만한 어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온 세상을 향한 그분의 계획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그 창조된 목적대로 살게 하려는 계획 말입니다.

 

사람이 진정 사람다울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관심이 오직 사람에게만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온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며, 그분 눈에는 모든 피조물이 다 귀합니다.

사람이 중요한 것은, 그가 모든 피조물의 well-being을 위한 하나님의 전략을 성공시킬 key-player이기 때문입니다.

끝임없이 당신을 실망시키는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늘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너무 많이 훼손시켰습니다.

오늘날 지구는 너무 아파하고 있고, 기후변화와 생태계파괴 등 이상징후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피조세계의 고통은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 인간의 well-being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게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은 내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을 

나 자신 만큼이나 귀히 여기고 돌보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늘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감사합니다.

 

늘 하나님을 실망시키곤 하는 나를 변함없이 생각해주시고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내게 더불어 살아갈 사람들과 자연을 허락하시고 그들을 사랑하고픈 마음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내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 돌보는 삶이 더 깊어져가게 하소서.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고 돌보는 삶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나게 하소서. 

 

주일에 우리 공동체에 주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준비하게 하소서.

 

암미유럽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 마음 속에 주의 은혜와 평강을 허락해 주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4)

 








2014년 1월 24일 오늘의 말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장 26a절)

 

그(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골로새서 1장 15절) 

 

 

묵상


 

태초에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로,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둘째로, (나타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든 사람 속에는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우리 안에 이 하나님의 형상이 많이 퇴색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남편에게서, 혹은 아내에게서 하나님과 닮은 모습을 자주 보십니까?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서 하나님 닮은 모습을 경험하며 안식과 평안을 느끼십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게 되면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주게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악한 사람도 많지만, 하나님 닮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도 적잖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런 사람에게서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고나면 나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가 더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비록 퇴색했다해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안에 얼마나 놀라운 잠재력이 있는지 일깨워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용서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 안에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고 교제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죄악으로 일그러진 형상을 드러내며 나를 아프게 했을 때,

그것을 그대로 다른 이에게 반사하지 않고, 예수님의 모습을 반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래서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나기를 소망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별이가 매일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오늘 하루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게 하소서.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들을 치유하시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오늘 예정된 우리 교회 청소년 및 청년 교육 프로그램들에 함께해 주옵소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우리 교우들의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늘 지켜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3)

 








2014년 1월 23일 오늘의 말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장 26a절)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태복음 22장 17-21절) 

  

묵상


 


옛날 로마제국 시대에 유대 땅에서 통용되던 동전에는 로마 황제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골탕먹이려고 질문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은 민족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이 되고, 아니라고 하면 로마제국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될 판입니다.

예수님은 동전 하나를 가져와보라 하시고 그들에게 되물으십니다.

“이 동전에 새겨진 형상이 누구의 것이냐?”  그들이 대답하길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여기서 ‘가이사의 것’이란 가이사가 부과하는 세금을 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헌금(물)을 의미하는 걸까요?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화폐는 가이사의 것이고, 따라서 가이사가 그것을 거둘 권한을 갖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두실 권한을 갖는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요지 아니겠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고귀하게 창조하셨지만, 그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타락으로 퇴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인간 안에서 희미해져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채로 창조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다!

아무리 그 형상이 퇴색되어 있다 해도, 그 어떤 사람도 쉽게 버려지거나 다른 곳에 귀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를 거두실 권한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그를 찾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볼 때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6-17)

 

아무리 세상에서 쓰레기처럼 하찮게 취급되는 사람, 심지어 ‘인간말종’이라 평가되는 비열한 인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한 나의 시각과 마음을 온전히 바꿔주시기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사람을 볼 때마다 그들 안에 있는 본래의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이 예수님을 통해 회복되게 해달라고,

또한 바로 그 일을 위해 부족하지만 나를 사용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계속해서 회복되어가고 있는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심으로 인해, 우리를 향한 무한한 소망의 원천이 되심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사람을 향한 나의 시각과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꿔 주소서.

 

사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일을 삶의 매순간에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가게 하소서.

 

이번 주일예배 때 꼬빌리시 교우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비하여 전하게 하소서.

 

2월 5일 체코-한국의 날을 준비하는 체코와 한국 청년들 마음 안에 열정과 기대감을 허락하소서.

  

알려드립니다

 

목요일인 오늘 오전 11-12시에 여러분의 자율기도를 위해 예배당을 개방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2)

 
2014 1 22일 오늘의 말씀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 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며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 7-8)
 
 
묵상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이거 주세요, 이거 주세요, 이거 주세요똑같은 간구를 반복하는 기도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눅18:1)에 대해 말씀하신 것일까요?
 
왜 불의한 재판장을 찾아가 원한을 풀어달라는 똑같은 요구를 반복한 과부의 비유를 드시면서,
 
하나님도 그처럼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말씀하신 것일까요?
 
기도할 때 똑같은 간구를 반복하는 것, 혹은 기도 중에 말을 많이 하거나 적게 하는 것은,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일 뿐입니다.
 
기도에 있어 보다 본질적인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내면, 즉 그의 믿음입니다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는 기도란, 내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실 뿐 아니라, 또한 주시기 원한다는 것을 믿지 않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기에 그 하나님의인색한마음을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마치 주문 외우듯 두 귀를 틀어막고 내 말만 계속 늘어놓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가 다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내가 구하기 전에 내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구하라하십니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했을 때 왜 바로 주시지 않습니까? 더 좋은 것을 더 좋은 때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7:11).
 
누가복음에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이 ‘좋은 것’이란 바로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구하기 전에 내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의 기도는 결코 일방적일 수 없습니다.
 
여기서 기도의 초점은 내게 너무나 필요해서 지금 구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아닙니다.
 
내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과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나 사이의 영적인 대면이요 소통입니다.
 
기도 중에 성령은 이 영적인 소통을 매개하시며,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서로 만나도록,
 
그리하여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마침내 하나가 되도록 도우십니다 (롬 8:26-27).
 
하나님은 내가 구하기 전에 내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면서도 나에게 “구하라” 하십니다.
 
내가 구하는 그것을 통해 나를 만나기 원하시고, 내가 구한 그것 뿐 아니라 더 좋은 것도 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는 생명의 길로 이끌어갑니다. 
 
오늘도 내가 느끼는 필요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필요들을 통해 하나님을 찾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구하기 전에 내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섬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늘 나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며,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부담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 의지하며 넉넉히 감당케 하소서.
 
2월 5일 체코-한국의 날을 통해 체코와 한국 청년들의 마음 속에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게 하소서.
 
꼬빌리시교회 온 교우들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마음과 뜻을 함께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알려드립니다
 
목요일인 내일 오전 11-12시에 여러분들의 자율기도를 위해 예배당을 개방합니다.
여건이 허락하시는 분은 오셔서 기도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1)

 
2014년 1월 21일 오늘의 말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 23절)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신명기 30장 19-20절) 
 
묵상
 
하나님의 천지창조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날에 빛을 만드셨고, 둘째 날에 하늘을, 셋째 날에 바다와 땅과 식물을,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을,
다섯째 날에 물고기와 새를, 여섯째 날에 땅의 짐승과 사람을,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 안식일을 만드셨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3절은 다섯째 날의 창조와 여섯째 날의 창조를 구분시켜주는 구절입니다.
왜 하나님은 다섯째 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를 만드실 때 땅의 짐승을 한번에 만들지 않으셨을까?
우리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다섯째 날 땅의 짐승들까지 다 만드시고, 여섯째 날엔 사람만 창조하셨어야 더 자연스럽고 뿌듯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섯째 날 하나님은 땅의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만드신 다음,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여섯 째 날 창조의 주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날 하나님은 땅에서 살아갈 개체들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독특한 피조물을 창조하심으로써 그 땅 위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 질서는, 인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날 때, 땅의 짐승들은 하나님께 순복하듯 인간에게 순복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30장 19-20절에서 모세는 가나안 땅 진입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 하나님의 질서를 다시금 상기시켜 줍니다. 
“너희 앞에는 생명과 축복으로 이어지는 길과 사망과 저주로 이어지는 길이 놓여 있다. 만약 너희가 이제 들어가 살게될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면, 너와 네 자손은 거기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만일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섬기면, 너희는 반드시 망할 것이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그 누가 사망의 길을 가고 싶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그 길이 좁고 험한 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좁고 험한 길이 정말 생명과 축복의 길임을 확신한다면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앞다투어 그 길을 가려 할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앞에 두고, 나 자신을 향해 다시금 질문해 봅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는 길이 생명과 축복의 길임을 확신하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이 생명과 축복의 길임을 확신하는가?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나를 두신 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는 길이 생명과 축복의 길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좋아해주고 내 생각을 지지해주는 체코인 동역자를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더욱 회복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께서 나를 두신 자리에서 예수님의 길을 더 온전히 따르게 하소서.  
 
내 앞에 놓인 어려움과 장애물들에 불평하기보다,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인간적 지혜와 힘을 의지하는 자의 계획이 좌절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정직한 자가 결국 승리하게 하소서.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일에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서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광 현 목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