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2.06)

2013년 12월 6일 오늘의 말씀
 
주 여호와께서 학자(제자, 가르침을 받는 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제자, 가르침을 받는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이사야 50장 4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태복음 1장 35절)
 
묵상
 
우리는 어떤 특별한 경건성이나 설교나 열심에 의해  
하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신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 덕분에 우리는 곤고한 자를 말씀으로 도와줄 줄을 알게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매일 하루가 시작되기전에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듣는 일 부터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번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루의 위대한 섬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한 일은 집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제자의 귀와 혀를 간구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실천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시는 증언입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에 
오늘 하루의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고,
곤고한자 연약한자 힘없는자 소외된자 격려가 필요한자
소망이 필요한자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위로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제자의 귀와 혀를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선교는 헤롯왕국과 예루살렘 성전 권력이 아닌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고, 가난하고, 머리 둘곳 없는 나그네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1. 제자의 귀와 혀를 내게 주소서.
2. 하나님 나라가 성취되는 방향과 그 하나님의 계획에 민감한 성도 되게하소서.
3. 주님이 심판주로 다시오심을 믿는대로 살게하소서.
4. 오직 주님만을 피난처와 요새와 구원의 반석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 되게 하소서.
5. 교리공부를 통해 우리 자녀들이 세례와 성만찬이 그들의 삶이며, 그들의 삶이 세례와 성만찬이 되게하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2.05)

2013년 12월 5일 오늘의 말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시편 66편 2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누가복음 4장 10절)
 
묵상
 
행복한 시편 기자입니다.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이 다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의 이 고백은
기도가 100퍼센트 응답된다는 뜻일까요?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하나도 없다는 뜻일까요?
 
금년한해 우리는 질병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도 계시고
우리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고통은 여전합니다.
가난과 재난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세상을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도 기도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구하고 찾으라고 합니다.
사도 들도 기도에 대해 언급합니다.
구한것은 얻은줄 알고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 속에서 많은 신실한 성도들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보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합니다.
체코 개혁교도들의 찬송가를 보면
자신들의 고통을 돌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탄식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복음을 복음되게하기 위해 수백년을 투쟁한 개혁교도들
복음을 복음되게하기 위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보헤미안처럼 수 백년을 떠돈 
보헤미안들과 모라비안들….
그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사회의소수이며 약자이며 가난합니다.     
오히려 폐쇄성으로 사회적 공동체에서 외톨이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번영신학과 축복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현재 모습은 무언가 잘못된 믿음 때문일까?
그 수 많은 세월동안 그들의 눈물과 고통을 하나님은 왜 외면하고 계실까?
 
만약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꼭두각시 처럼 움직이는 연출자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깊은 바다와도 같은 그의 침묵이 있었기에,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은 믿음을 성장시켜 
하나님의 크기와 깊이를 더 풍성하게 깨달아
하나님 안에 사는 법을 스스로 알게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자유함이 되는지
자유자는 그 자유를 스스로 깨달을때 비로서 참된 자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본문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다면” 
체코어 성경은 “kdybys znala co dava Buh”
즉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너는 나에게 구하였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리고 그것이 “생명의 물”처럼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때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유보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기도를 멈출수 없습니다.
기도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침묵의 시간없이 받기를 원하다면
우리는 천박한 신앙을 원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1.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은 길고긴 침묵이 우리에게 축복임을 알게하옵소서.
2. 조급하고 성급한 마음을 멀리하고 “오직 주님”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 우직한 믿음을 주옵소서.
3. 믿음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꼬빌리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4. 주님 오심으로 기다리는 믿음으로 한해를 잘 마무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2013년 마지막 달이 되게하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2.04)

2013년 12월 4일 오늘의 말씀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이사야 65장 19절)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
 
묵상
 
” I have a dream.” 마르틴 루터 킹의 유명한 연설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네 명의 내 자식들이 피부 색이 아닌 그들의 품성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깨어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창조되었다는 자명한 이념을 신봉한다는 미국의 신조안에 깃듯 참 뜻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의 꿈은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깍아내려 절벽은 평지를 만드고 비탈진 산길을 넓히는” 이사야의 “새 하늘과 새 땅”의 꿈이었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에 의해 이 세상은 진보되고 변화되어왔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꾸어야 할 꿈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번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에서 새롭게 작성한 선교문서는 “우리는 개인주의적이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세대를 향해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질문하고 있습니다.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던 신학자 알렉산더 핫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영원한 본향, 그리고 구원 받는 사람들이 영원히 거하게 될 본향은, 그 구조나 환경이나 조건이나 활동에 있어서 완벽하게 인간적일 것이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부활체를 지닌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과 활동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도덕적이고 감정적이며 자유의지에 따라 적극적인 활동이 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라고 불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인간의 모든 재능과 은사가 충분하게 사용될 것이며 사람들의 모든 감각들이 최상을 느끼며 그들의 이상들이 다 실현될 것이다. 여전히 이성적인 존재일 것이고, 지적 호기심, 상상, 미적 감각, 거룩하고 순결한 감정과 사랑, 사회적 친분, 친구 등…. 인간의 영혼을 무한하게 만족시킬 수있는 모든 자원들이 가득차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무한한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늘나라는 우주의 역사와 모든 피조의 가장 절정의 꽃이며 열매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 땅에서
바로 이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의 눈으로 주를 바라보는 데 익숙해야지
세상의 매력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한 삶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주님 만 바라보고, 주님만 기다리며, 차라리 죽으면 죽을지언정 주님으로 부터 오는 도움 외에 다른 도움은 구하지 않겠다는 일사각오의 믿음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자신의 오장육부를 도려내는 아픔과 같은 뼈를 깍는 회개를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자신도 느끼지 못할정도로 너무 세속화되어 있고, 이교도적인 경향에 물들어 있기때문입니다.
 
기도제목
 
1. “새하늘과 새땅”을 자신의 꿈으로 삼을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2. “오직 주님”으로 살아가는 믿음으로 내 존재가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3.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에 우리 성도 모두가 큰 깨달음과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4. 질병과 삶의 고통으로 고통받는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2.03)

2013년 12월 3일 오늘의 말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출애굽기 7장 7절 상반절)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으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 1장 22-23절)
 
묵상
 
“내 백성”
백성은 한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대중들을 의미합니다.
백성이란 용어를 사용할땐  국가 공동체를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내 백성”이라고 하셨을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백성 각 개인이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 관계라는 뜻이며
그리고 그 관계는 애굽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이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이며,
성도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다는 뜻입니다.
성도의 신앙은 개인적 영성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교회 공동체적으로 표현되어져야 건강한 신앙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개인과 교회는 신앙성장의 양날개와 같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고역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요청은 일방적입니다.
그러나 그 요청에 대한 응답은 자유롭습니다.
애굽 사람들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뜻을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이기가 쉽지않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전혀 다른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노예생활로 인한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모세의 말을 듣지않았습니다 (6장 9절)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사람들의 종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역과
권리가 전혀없는 감옥같은 인생에서 비롯되는 고통의 신음소리를
들으시면서 마음 아파하십니다 (6장 5절)
하나님 아닌 것은 우리 인간에게 모두 애굽같은 제국입니다.
인간은 애굽제국의 일원으로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깊이 성찰해 보면 사실 희망없는 노예로 살고있습니다.
노예의 삶에도 가마솥에 끓는 고깃국과 배불리 먹는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겠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언제나 배부름에 대한 인간의 목마름은  
자유를 망각시키는 환각제일뿐입니다.
환각제는 중독현상이 필연적입니다.
점점 더 많은 양의 환각제를 필요로 합니다.
 
인간 욕망의 환각제에 중독되면 될 수록
하나님을 찾는 마음의 빛이 점점 흐려집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겠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겠다”
이 요청을 우리들에게 하시면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계절입니다.
자본주의 상술에 물든 성탄절 분위기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고 심령 깊은 곳에서 응답이 있는
복된 계절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제국에 정복된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지만 세상과 분리되어서 안됩니다.
마음이 완고한 애굽왕 바로가 하나님의 능력앞에 굴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개인신앙안에 머물러서 안되는 이유입니다.
산 위의 등불은 감출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세상 속에서 드러나지 않으면
세상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신앙의 자랑은 아무 쓸모없습니다.
개인의 신앙은 교회 공동체의 믿음으로 발전해야됩니다.
교회 공동체 즉 그리스도의 몸을 외면한 개인신앙은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결국 성도 개인도 교회도 맛을 잃은 소금처럼 길거리에 버림을 받아
오가는 세상 사람들의 발밑에 밟히게 될것입니다
 
기도제목
 
1. 믿음의 성장이 있는 성탄절기가 되게 하옵소서
2. 세상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교회 되게하옵소서 
3.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도 백성 삼으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내가 먼저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4.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심에 빠지지않고 나를 버려 이웃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과 실천이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3.11.30)

2013년 11월 30일 오늘의 말씀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시편 146편 4절)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로새서 3장 2절)
 
묵상
 
1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째주 직전 토요일로,
저희 교회가 전통적으로 보흐니쩨 장기입원 환자들에게 선물할
성탄선물을 구입하는 음식 바자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이 일을 시작한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체코와 한국 그리고 일본 교우들이 자신들의 전통 음식을
각 가정에서 준비해서 이 날 판매를 합니다.
한국음식을 하려면 비싼 재료비를 감당하고 음식장만을 위해 수고도 하며
기쁨으로 내어논 음식을 온교우들과 교회 이웃들과 지인들이 방문을 하여
순식간에 음식이 동이 납니다.
교우들 몇분들은 자발적으로 한곳에서 모임의 흥을 돋구는 연주를 하고
참가자들은 둘러앉아 담소를 하며 한끼 점심을 먹으며 교제를 나눕니다.
 
보흐니쩨 정신병원에서 정신질환으로 장기입원한 환자들은
가족과 친구관계가 거의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곳에서 질병의 치료보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일일이 구입하여 포장을 하고 멋진 디자인의 글씨체로
직접 이름을 써서 전달을 하며 성탄의 기쁨을 전합니다.
 
이 행사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의미를 주고있습니다.
교회와 높은 담을 쌓고 있던 교회 동네 정신병원을 위한 이 행사를 통해
정신병원이 교회에게 문을 열고 지역 목회자들이 함께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43개 병동 환자들을 위해 예배와 신앙상담을 하게되었습니다.
체코의 정신병원은 철저히 무신론적인 심리학적 이론과 약물의 치료를
전통적으로 하고 있어 신앙적인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였습니다.
정신분석학 이론 창시자인 프로이드가 바로 체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시대때는 막시즘과 정신분석학을 연결하는 연구가
활발하였습니다.
이러한 공간이 교회를 향해 문을 열게 만든 계기가 마련된것은
바로 이 음식바자회를 통해 성탄절 선물을 전달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동안 기도받길 원하고 성경을 배우기를 원하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된 이들로부터 선교가 시작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교적 의미뿐 아니라
보흐니쩨 정신병원의 장기입원 환자들을 생각하며
이 바자회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정신이 소멸되어 가는 분들을 바라보면
인생은 참으로 무상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호흡이 끊어지면.
그날은 예외없이 우리의 정신도 소멸되고 맙니다.
아무리 큰 꿈과 인생의 계획을 세워도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있어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정신줄”은 끊어질 수 있습니다.
정신줄이 끊어지면 우리의 생각과 계획은 소멸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무상과 한계성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유한한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하는 삶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오직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고
시편은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지혜의 말씀을 외면하지 않고, 깊이 숙고하고 묵상하는
11월 마지막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도제목
 
1. 오직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으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신자 되게하소서
2. 오늘 음식바자회를 통해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영광이 있게하소서
3. 음식바자회를 준비하고 수고한 모든 마음들이 하늘의 기쁨이 있게하소서.
3.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는 내일 체코 한국 일본 콩고 및 여러 열방이 함께 드리는 예배 되게하소서 
4. 예배를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의 감화 감동이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음식 바자회를 기쁨으로 수고하는 성도들이 계시니 감사 
여러 열방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