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2.12.22)

2012년 12월 22일 오늘의 말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가 5장 2절)
묵상
물질주의의 성공을 열렬히 갈망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읽는다면 아마 모두 귀가 솔깃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개천에서 난 용이 되고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이 성취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수 많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모두 건너뛸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언의 성취의 주인공이 되고싶지만
주인공을 만들기위한 조연과 징검다리가 되는 것은 원치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성도로 불러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도록
우리를 조연으로 징검다리로 삼기위해서라는 생각을 해보게됩니다.
이에대해 매우 비참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으로 부터 온 행복의 맛에 길들여 있어,
하늘로 부터 오는 참된 행복의 맛을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아기가 젓을 떼기위해 이유식을 하며 입맛을 훈련하기 까지
젖맛 외에 음식 맛을 잘 모르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될 때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만하면 됩니다.
미가의 오늘 예언의 성취의 조연이자 징검다리는 
바로 마리아 라는 한 처녀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통로라면
마리아의 신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내일 주일 이 마리아에 대해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큰 은혜가 되는 말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주님,
당신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유한한 존재가
당신의 영원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우리의 마음에 싹트고 있다는 뜻입니다.
나 비록 악할 지라도
내 안에 당신의 영원함이 있어 소망이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2.12.21)

2012년 12월 21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출애굽기 33장 5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것이
들의 백합화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29절)
묵상
<단순한 디자인이 성공한다>는 자일스 콜본의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에서 말하듯이
세상이 복잡해도 너~~무 복잡해서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합니다.
아무리 복잡한것도 단순하게 간단하게 설명해 주기를 원합니다.
저는 요즈음 개콘을 열심히 봅니다.
하고싶은 많은 말을 단순한 말 한마디에 담으면 대박입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므니이다>
<소고기 사먹으면 뭐하겠노~>
세상은 이렇게 복잡함을 단순함으로 핵심으로 정리하길 원하는데
우리 기독교 성도들의 삶은 이러한 세상의 흐름과 역행하는 것같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는 핵심에 집중하기 위해 버릴 줄 알면서
신앙생활은 나이브해도 너~~무 나이브합니다.
경건의 모양을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를 
훈장처럼 치렁 치렁 매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자꾸 복잡스러워집니다.
신앙생활도 핵심에 집중하면
참 영과 거짓 영이 분별되는 영분별의 능력이 생깁니다.
자신의 영을 건강하게 복되게 가꾸어갈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도
들의 백합화 보다 아름답지 못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생활은 핵심에 집중하고
거추장 스러운 마음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래야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알게됩니다.
기도
주님,
제 믿음의 삶의 뿌리가 지나치게 잔뿌리가 많습니다.
뿌리가 뻗기좋은 곳으로만 
잔뿌리를 이리 저리 뻗치고 있습니다
탐욕의 땅에, 물질주의 성공의 땅에 
나의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주님,
잔뿌리를 모두 절단시켜주시고
척박한 땅을 파고 드는 
포도나무 한줄기 뿌리처럼 
깊이 깊이 당신의 구원의 복음에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주님
풍성한 잔뿌리는  
바람이 불면 일순간에 뿌리채뽑혀 버립니다.
현혹되지 않게 하옵소서.
솔로몬의 영화로 입은 옷에
침흘리지 않게하시고
소박한 들 백합화의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2.12. 20)

2012년 12월 20일 오늘의 말씀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창세기 27장 3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마태복음 25장 12절)
묵상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둘러싼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잘 아실줄 압니다.
축복이란 물건과 같은 것이 아니어서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에서를 또 다시 축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기억나게 합니다.
오늘 에서의 탄식과 눈물은 축복으로 묘사되는 마지막 심판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다른 한 쪽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을 받는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내는 역설적으로 
마지막 심판의 때가 분명히 있으며 
그리고 그 날의 냉혹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하나님은 냉정하게 그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시계는 멈추지않고 계속 마지막 때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2012년과 2013년 경계 위에서 다시 마지막 때를 기억하며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십시다.
마지막 심판때 에서와 같은 탄식과 눈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기도
주님,
우리 자신과 교회가
갈 길을 잃은 세상 속에 어떤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까?
세상이 주는 혼탁한 소리에 혼란에 빠져
생명의 능력이 되는 주님의 소리를 나누지 못하는
우리 자신과 교회가 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2.12.19)

2012년 12월 19일 오늘의 말씀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창세기 23장 4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로마서 6장 4절)
묵상
사라의 무덤과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가나안의 땅 막멜라에 사라를 매장하길 원했습니다.
그 땅을 소유자 에브론에게서 은 사백 세겔에 구입하여 아브라함은 자신의 소유지로 확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이삭과 이스마엘과 요셉이 모두 함께 묻힙니다.
이와같이 나그네와 일시 체류자들이 타국 안에서 
자신들의 정착지를 만들어갔습니다.
몇대에 걸쳐 죽어 한곳에 묻힌 그 무덤이 그들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실현되는 출발이 되었습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자리를 더 나은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서 안되고
진득하게 우리의 무덤의 자리로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모든 일에 진실된 삶을 노력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다시 산다는 
믿음의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변석개>하는 삶의 태도, 
양심과 영혼을 팔아먹듯 <아전인수>격으로 주장하는 삶의 태도로
우리는 참된 구원의 길을 알 수 없습니다.
기도
주님,
내 자신이 당신의 구속의 사랑으로 일구어 낸 
영혼의 밭이 되게 하옵소서.
내 삶이 살아가는 그 자리가 
모든 이들이 다시 돌아와 묻히고 싶은 
막벨라 굴이 되게 하옵소서.
마치 우리 주님의 구속의 죽음처럼…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2,11.23)

2012년 11월 23일 오늘의 말씀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세기 9장 13절)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가복음 14장 23-24절)
묵상
일반적으로 인간관계의 출발은 <불신>입니다.
인간사회가 계약과 법에 의해 지탱되고 있고,
형벌의 책임으로 계약과 법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서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간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 약속을 믿어야한다고 
강력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하신 약속을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
주님, 
힘들고 어려울 수록 
오직 주님의 약속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동경 니시아라이 교회 설교를 잘 마치게 하신것 감사
인터넷 연결되게 하신것 감사
가까운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소식 듣고 
다시 죽음과 마지막 때를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
신도를 믿으면서 무종교라고 대답하는 일본사회의 
종교이해를 더 분명하게 알게 하시니 감사
일본선교는 다른 나라의 선교와 차원이 다름을 알게하시니 감사
일제식민지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 시대에 시대의 파도에 떠밀려
살아온 우리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삶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시니 감사
처음 접해본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