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2.11.02)

2012년 11월 2일 오늘의 말씀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복음자리를 뒤흔들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의 백성을 인도하셨고
(신명기 32장 11절)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베드로전서 1장 5절)
묵상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시키는 모습을 
광야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독수리들의 둥지는 높은 나무나 절벽 위에 만든다고 합니다.
어미들은 새끼들의 복음자리를 뒤흔들고
새끼들은 생명을 부지하려고 연약한 날개를 휘젓지만 아래로 떨어지고
그때 어미들은 날쌔게 날아가 새끼를 안전하게 날개 위에 업어 
다시 둥지로 옮겨놓습니다. 
이것을 반복하면서 독수리 새끼들은 어느새 강한 날개를 소유하게 됩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에게 강한 날개를 갖게하는 것이
가장 적극적으로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연약한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지만
진정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론 우리의 보금자리를 뒤흔드는 시험을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독수리 날개처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세상의 보금자리는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임시거처입니다.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더 먼 곳으로 날아야 하는 독수리들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오늘 우리의 보금자리 삶의 자리의 의미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님,
내 보금자리가 흔리드리는 그 곳에 
당신이 계십니다.
매우 가까이 나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믿음은 나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확증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믿음을 나의 날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주 만물에 가득하게 임재하시는 우리 주님의 품 안에서
이 믿음의 날개로 날아 우리 주님의 임재를 알게하시길 원하십니다.
이 믿음의 날개로 더 높이 오르고 더 멀리 날아서
영원한 나라에 다다를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믿음의 날개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주님,
나의 보금자리가 흔들립니다.
인생의 반평생 살아온 나의 존재가 흔들립니다.
불안과 염려 속에서 새싹같은 여린 내 믿음의 날개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약속의 말씀으로 
내 믿음의 날개가 좀 더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내 믿음의 날개로 쑥 쑥 창공을 날고 싶습니다.
흔들리는 보금자리, 흔들리는 내 반평생의 존재를 뒤로하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하여 우리 주님의 영광을 보고싶습니다.
아멘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2.11.01)

2012년 11월 1일 오늘의 말씀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잠언 10장 12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전서 13장 1절)
묵상과 기도
주님,
세상에 <죄악들의 사랑과 관용>이 넘쳐납니다.
죄악들이 서로 두둔한다(롬1:32)는 말씀이 오늘날에도 세상에 만연합니다.
죄악들은 관용과 사랑의 이름으로 서로 눈을 감아주며
죄악들은 서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어서 밀어줍니다.
죄악들은 서로 달콤한 입맞춤을하며 <정직과 진실>을 왕따시킵니다. 
<죄악들의 사랑과 관용>이 넘쳐나는 이 세상 속에서
주님, 내게 사랑을 가르쳐 주십시요.
사랑이 없으면 나의 생명도 없습니다.
나의 육신의 모든 삶이 의미를 잃어버리고 
번민으로 가득차 나의 삶의 길을 잃어버리게됩니다.
주님,
주님은 온갖 시험과 유혹과 악을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사랑의 전능함을 믿을 수 있도록 확신을 주시고
주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지혜를 따라 살도록 인도하여주십시요.
주님의 그 사랑이 내 속에 차고 넘쳐 맹렬한 힘이 되게하십시오.
아멘

꼬빌리시 새벽묵상(2012.10.30)

2012년 10월 30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62장 11절)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베드로전서 1장 20절)
묵상과 기도
주님,
저희는 시한부 피조물임을 모르고 살아가는 참 우둔한 자들입니다.
태어나고 죽는 정한 이치를 우리들 앞에 두셨고
그 이치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저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마지막 심판이 있어 상급과 보응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주님,
인간은 시간은 선물이고 마지막 심판이 있음을 스스로 부정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그 문제를 극복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의 시스템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이성과 과학과 진보가 소위 인류애와 박애정신으로 포장을 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정신이 들어있습니다.
인간은 과학을 발전시켜 질병치유를 넘어 죽음 극복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일상의 삶에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미친듯이 일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한정된 시간안에 자신을 각인시켜 죽음의 때를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아무 목적없이 집을 짓는 개미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저희에게 영생의 시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진리를 탐구하여 이 세상에서 참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해주십시요.
아멘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2.10.29)

2012년 10월 29일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사무엘상 7장 12절)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디모데후서 4장 17절)
묵상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 이유
나를 통해 당신의 말씀을 전파하시기 위해
와~우!!! 믿을 수 없는 사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대됩니다.
기도
주님,
주님이 저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사무엘처럼 저도 주님께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에벤에셀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저를 도우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와 동행하시며, 
내가 아슬아슬하게 시험에 빠지기 직전 당신은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주님,
이렇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통해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춘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입니다.
나는 매일 당신의 복음의 빛을 감추고 방해하는 자인 줄만 알았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나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한 줄기 빛도 제게서 나오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내게 힘을 주시는 이유를 깨닫고 보니,
정말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오늘도 세상 속에서 어쩌면 세상 사람들처럼 또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오늘 저를 자녀삼아 주실 것을 또한 믿습니다.
저에게 당신의 말씀을 비추듯이,
오늘 저를 통해 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빛이 비추어지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오직 주님의 높으신 뜻과 진리만 들어나도록 
저와 함께하시고 저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1. 감기에 걸려 다시 건강을 생각하게하시니 감사.
2. 찬양대 대원들이 서로 격려하며 봉사하니 감사.
3. 섬김과 헌신 위에 세워지는 교회를 보니 감사.
4. 세상 속에서 성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
5.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나를 성도로 만들어간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2.10.27)

2012년 10월 27일 오늘의 말씀

무릇 여호와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이는 여호와가 생수의 근원이기때문이다.
(예레미야 17장 13절)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히브리서 3장 12절)
묵상
계몽주의는 중세 기독교회의 타락과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나
오늘날 까지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철학입니다.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로의 변화였습니다.
인간은 이성과 합리로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지금 역사이래로 이처럼 과학이 발전한 적은 없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신처럼 
스스로 무엇이던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현대 인간사회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을 부인하고 나니 사회 문화 정치 심지어 예술까지 
모든 인간사회가 벽에 부딛쳤습니다.
다시 인간은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발전시키고 있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과학까지도 
상대적인 것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없는 상대적인것임을 
인간들은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대 경향을 학자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는 중세교회의 타락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을 떠나 살고있습니다.
마치 탕자가 집을 떠난뒤 아버지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기 시작하듯이
이제 인간사회는 하나님의 존재를 새롭게 알기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이기적 물질주의 경향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사회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급류처럼 흘러가는 이러한 시대 경향 속에서
우리 성도들의 삶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 급류에 휩쓸려가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믿음을 분별하여 즉 자기자신을 믿음으로 잘 성찰하여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급류처럼 흘러가는 이기적 물질주의의 사회 속에서
우리 꼬빌리시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의 피난처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마지막때에 남겨두신 그루터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하는 
마지막 소금과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인간사회는 다시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에게서 
인간사회가 다시 소망을 시작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주님,
저와 우리 성도들 그리고 우리 교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불신앙적이며 이기적인 물질주의의 흐름이 
급류처럼 흘러가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배는 너무 작고 연약합니다. 
아멘
알림

오늘 토요일 18시 프라하성 비트성당에서 구본룡 교우가 속한 쁠젠 필하모닉의 협연이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석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