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빌리시 새벽묵상 (2015.1.2)

2015년
1월 2일 금요일 오늘의 말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5절)

 

묵상

 

온유한 사람은 타인에게 자기 자신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한 공간을 남겨 둡니다.

 

온유한 사람은 땅을 독점하지 않습니다. 온유함은 자포자기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폭력적인 충동들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우리의 재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돌보고 관리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지구의 자원들은 무제한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의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음 세대들과 연대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소비하고 자연자원들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필요들과 언제나 더 갖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서의 적절한
균형 말입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삶의 양식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그 상상력과 창의성을 매일의 삶 속에서 발휘해야 하며, 그것은 또한 과학적인 연구와 예술적인 영감, 사회를 위한 새 프로젝트들의
개발로 이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점검하고, 인공적이고 과도한 것들에 대한 단순화를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을 단순화하는 것은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나눔을 위한 공간을 열어놓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쉼과 묵상의 시간이 우리에겐 필수적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온유하심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온유한 삶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주님, 우리를 온유한 삶으로 이끄소서.

 

우리 안에 있는 독점 욕망을 제어하고 타인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며 살게 하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땅을 온유함으로 잘 돌보며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Bog jest miloscia / Nas buh je laska>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31)

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오늘의 말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9절)

 

묵상

 

평화는 그저 싸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행복입니다; 평화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게 적절한 자리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평화를 받아들일 때, 그 평화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에게로 확장됩니다.

 

평화에 대한 갈망은 우리 마음이 보다 많은 것을 품게 하고 그 모든 것에 대한 긍휼로 가득차게 합니다.

 

그 평화에 대한 갈망은 우리의 가족들과 이웃들과 매일의 활동들을 향한 환대와 친절의 태도로 표현됩니다.

 

보다 넓은 범위에 있어서 정의의 뿌리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사치와 가난이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여러 다른 형태의 폭력들이 일어나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요?

 

부를 나누는 것은 긴장을 완화하고 공동의 선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공적인 삶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예를 들어 그들이 일하는 기관이나 직장에서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섬김으로써,

 

평화를 증진하는 일에 온전히 헌신합니다.

 

몇 분간 침묵하며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평화와 오늘의 세상에 대해 생각할 때 어떤 사람들, 어떤 상황들이 마음에 떠오릅니까?

 

나는 그들 혹은 그 상황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왜 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라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까?

 

평화를 만드는 일을 위해 우리는 어떤 단계들을 밟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평화가 없는 누군가에게로 갈 수 있을까요?

 

특별히 이주민들을 향해 어떻게 우리는 참여적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불의한 상황을 분별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근대적 형태의 노예상태를 인식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에게, 예를 들어 매주 일요일 저녁 30분 동안 이를 위해 침묵 속에 머무는 이들에게 동참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묵상 내용을 통해 여러분은 어떤 격려를 받으셨습니까?

 

감사합니다

 

한 해 동안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주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제목

 

평화를 이루는 삶을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게 하소서.

 

오늘 하루 떼제 행사 일정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소서.

 

오늘 밤 11시부터 예정된 떼제와 함께하는 송구영신예배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El Senyor / Kazdy den>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30)

떼제
유럽청년모임 기간 중 꼬빌리시 새벽묵상은 행사자료집에 있는 Daily Program의 내용을 함께 나눕니다.

 

2015년 12월 30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마태복음 5장 13절)

 

세상의 소금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그 선물을 환영합니다.

 

세상의 소금이 됨으로써 우리는 인생의 참 맛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위해 이처럼 우리가 나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 때, 우리의 삶은 의미있게 됩니다.

 

인생에서 수많은 장애물과 만나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왜 나는 이런 삶의 투쟁을 계속해야 하지?”

 

그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주 약간의 소금만으로도 맛을 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듯 나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은사와 우리의 능력을 아십니다.

 

우리의 맛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들을 신뢰하는 것을 뜻합니다.

 

함께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우리를 진정 자라게 하고 온전한 성취로 이끌어줄 그 무엇을 추구하며 살 수 있을까요?

 

무엇이 나로 하여금 프라하에 오게 했습니까? 나는 이 도시와 이 나라와 그들의 역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인생의 참 맛”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그 맛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나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참으로 믿습니까? 그분의 이 말씀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우리가 세상의 소금으로 살게 하소서.

 

떼제행사를 통해 참가 젊은이들과 이곳의 교회들 안에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소서.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26)

2014년 12월 26일 금요일 오늘의 말씀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장 59-60절)

 

묵상

 

성탄절 다음날인 오늘을 유럽의 교회들은 스데반 순교 기념일로 지킵니다.

 

스데반은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하나였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지혜와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그의 대적자들은 그가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스데반은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율법이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바른 말 하는 의인들을 계속해서 죽여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의 대적자들은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갑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보며 말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그러자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칩니다.

 

결국 스데반은 다음과 같은 두 마디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과 같은 말을 남기고 그는 순교한 것입니다.

 

얼핏보면 성탄의 이야기와 순교의 이야기는 서로 잘 어울리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기쁨의 성탄절 바로 다음에 이 순교의 이야기를 접하며 어쩌면 즐거웠던 기분이 망쳐진 듯한 느낌을 받는 이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빛 속에서 이 둘은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 말씀하신 사건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순교는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내가 하나님과 함께합니다” 고백하는 행동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을 귀히 여기십니다 (시116:15).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순교의 행렬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결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계6:11).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복된 삶의 길에 대한 본을 보여준 신앙의 선배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주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바른 삶의 길을 가게 하소서.

 

믿음 안에서 끝까지 주님과 함께하는 우리들의 삶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새 해를 시작하는 꼬빌리시 교우들 다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

꼬빌리시 새벽묵상 (2014.12.24)

2014년 12월 24일 수요일 오늘의
말씀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누가복음
2장 6-7절) 

 

묵상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1:38)

 

이 순종의 응답과 함께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잉태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그 제국 내의 모든 사람은 고향으로 가서 호적하라 합니다.

 

힘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이런 명령을 내리니 힘없는 사람들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므로 베들레헴으로 가서 호적해야 합니다.

 

그는 임신중인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을 향한 힘든 여정을 시작합니다.

 

오랜 여행 후 마침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의 진통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지역 여관에는 그들이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마굿간에 들어가 아이를 낳고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일어난 이 모든 상황들이 세상적인 관점에선 비참하고 불행해 보일 지 모릅니다.

 

안 좋은 상황만 골라서 일어나고 있는 듯 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자기 안에 품은 사람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이 모든 상황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라든가,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러 있었던 곳은 그들의 그 힘겨운 여정과 초라하고 냄새나는 마굿간이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조용히 구원의 새 역사를 시작하고 계셨습니다.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좋지 않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초라하다 해서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런 상황이나 처지에 있는 사람을 너무 불행하게 여기지도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힘든 상황과 초라한 자리에 나와 함께하시며, 바로 거기서부터 새 역사를 시작하시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성탄 전야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힘들고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소서.

 

기꺼이 낮은 곳에 처하려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소란하고 화려한 자리보다 소외되고 초라한 자리에 눈길을 돌리며 관대한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오늘 오전에 세 공동체 목회자들이 보흐니쩨병원을 방문해 성탄선물을 전달할 때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소서.

 

오늘 저녁 6시부터 꼬빌리시 교우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와 교제의 시간 중에 주님의 임재가 나타나게 하소서.

 

오늘의 찬양

 

<O Holy Night>

 

 

오늘 하루도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광 현
드립니다.